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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난이 사는 집 - 판자촌의 삶과 죽음 (커버이미지)
    [사회]가난이 사는 집 - 판자촌의 삶과 죽음
    • 김수현 지음
    • 오월의봄
    • 2023-12-27

    그 많던 판잣집은 어디로 갔을까?그곳에 살던 가난한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판자촌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는 무엇인가?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집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어디에서 살아갔을까? 이 책은 한때 서울 인구의 40% 가까이가 살기도 했던 판자촌의 역사를 통해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집의 역사를 추적한다. 판자촌의 형성과 밀집, 그리고 소멸 과정은 곧 한국경제의 성장 과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 자본주의의 폭력성도 숨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집을 잔인하게 철거하고, 그들을 내쫓는 과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큰 이익을 봤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쫓겨나야만 했다. “실제 판자촌의 역사는 철거의 역사나 다름없었고, 그에 저항해 싸운 역사이기도 했다.”(153쪽) 가난한 사람들이 도시에 정착하기 위한 전지 기지였고,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공동체이기도 했던 판자촌은 1980년대 폭력적인 철거 과정을 거치면서 한꺼번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 판자촌이 있던 자리에는 부자와 중산층이 살아가는 아파트가 세워졌다. 판자촌 주민들은 대부분 그 아파트에 입주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판자촌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판자촌이 철거된 후 가난한 사람들은 영구임대주택, 비닐하우스촌,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쪽방 등으로 흩어졌다. 책은 이 과정을 자세히 살피고, 판자촌 이후의 판자촌인 여러 형태의 집들의 역사도 살핀다. “일가족이 가난으로 스러져도, 아동학대와 방임이 있어도 철문 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알아차리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가난하지만 역동적이었던 동네는 이제 가난이 숨겨진 집들로 흩어진 것입니다. 가난이 사는 집은 그렇게 모양을 달리하며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나쁜 조건에서 말입니다.”(8쪽)판자촌 철거의 역사,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판자촌 철거의 역사는 도심 재개발의 역사이기도 하다. ‘대전이나 대구 규모의 초대도시로 구상한 도시’인 광주대단지 개발, 시민아파트 건설, 합동재개발사업, 뉴타운사업 등 책에는 도심 재개발의 역사가 자세히 담겨 있다. 대규모로 재개발이 진행될 때마다 가난한 사람들은 집을 잃고 다른 곳으로 흩어져야만 했다. 시민아파트 등 그들을 위해 짓는다는 집에 그들은 결코 들어가 살 수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또 다른 나쁜 주거지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특히 전두환 정권 시절 진행됐던 합동재개발사업은 가히 폭력적이었다. 합동재개발사업은 주민(가옥주)과 건설업체가 각각 조합원과 참여 조합원이 되어 ‘합동’으로 재개발사업을 한다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합동재개발사업은 1983년 시범사업을 시작한 이후 빠른 속도로 서울 전역의 판자촌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합동재개발사업의 충격은 컸다. 1980년대 초만 해도 서울 시민의 10% 이상이 거주하던 판자촌이 10년 만에 2~3%가 사는 곳으로 줄어들었다. 줄잡아 70만 명 이상이 판자촌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영구임대주택, 반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쪽방 등이 판자촌의 빈자리를 대신했다. 더군다나 이 연쇄 이동으로 다세대·다가구주택에서 근근이 살아가던 사람들마저 임대료 인상의 폭탄을 맞았다. 판자촌 주민의 관점에서 보면 합동재개발사업은 자신들의 주거지를 상위계층에게 제공하는 사업일 뿐이었다. 즉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사업이었다. 특히 판자촌 세입자들을 위한 대책은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더욱 잔혹했다. 합동재개발사업은 한국사회에 나쁜 선례를 많이 만들었다. 용적률 증가에 따른 개발이익을 사유재산처럼 소유자가 독식하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정부는 도시 개선을 위해 재정이나 자원을 투입하지 않아도 될 명분을 얻었다.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그저 개발 규제만 완화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시장 중심 규제완화론이 재개발, 재건축의 원칙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런 도시 재개발 논리는 부동산 시장을 더욱 양극화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시에서 살기 어렵게 만들었다.철거에 맞서 싸운 주민들책은 도심 재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철거민들의 저항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 기본적으로 정부는 집을 철거하기 전에 다른 곳에 살 자리를 제공한다는 원칙은 가지고 있었다. 시 외곽에 집단정착지를 만들었고, 광주대단지는 그중 신도시급 대규모 정착지였다. 시민아파트도 판자촌을 철거하고 주민들을 입주시키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이 주민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광주대단지는 수도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은 황무지에 불과했고, 시민아파트는 생활 형편에 비해 입주금이 너무 비쌌다. 더군다나 세입자들이나 후발 전입자들은 대상이 아닐 때도 많았다. 결국 1971년 광주대단지에서 참다못한 주민들이 들고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1970년대 철거 싸움은 대부분 일회성에 그쳤다. 대신 체념하거나 또는 분을 못 이겨 목숨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았다.조직적인 철거민운동이 시작된 건 1983년부터였다. 1983년 목동 주민들이 들고일어났다. 목동 주민들의 대응은 1970년대의 철거 싸움과는 차원이 달랐다. 무엇보다 조직화되고 체계적이었으며, 장기간에 걸쳐 지속되었다. 이전까지 이뤄졌던 ‘한차례 들고일어나는’ 수준의 철거 반대와는 차원이 달랐다. 100여 차례가 넘는 집회, 시위를 거치면서 약 2년간 계속되었다. 특히 당시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가두점거 농성이나 구청 진입, 경찰서 앞 시위 등이 수시로 벌어졌다. 이후 철거민 싸움은 사당동, 상계동, 돈암동, 오금동, 구로동 등 100여 곳이 넘는 곳으로 확대되었다. 초기에는 학생운동권이나 종교계 등의 도움을 통해 조직화되기도 했지만, 차츰 주민들이 스스로 연합조직을 만들고 이끌어갔다. 1987년 ‘서울시철거민협의회’(서철협)를 시작으로 1990년 ‘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주거연합) 등이 이런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책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싸웠던 제정구, 정일우, 허병섭, 고광석, 김흥겸 등 빈민운동가들도 조명하고 있다. 저자 또한 이 당시 철거민운동에 함께했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도시는 가능할까?판자촌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싼 집이 필요한 사람들은 존재한다. 저자는 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싸고, 좋은 집’을 우리 사회가 갖춰야 하며, 더 좋은 조건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쫓겨나지 않는 개발 정책이 필요하며, 그런 점에서 도시재정비의 개발이익은 소유자뿐 아니라, 거기서 살아가는 가난한 계층, 나아가 도시 전체의 발전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야 여러 소득계층, 여러 연령층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도시가 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좋은 집에서 살 수는 없다. 그래도 최대한 모두 싸고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모두가 좋은 동네에서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어느 동네든 안전하고 쾌적하며, 편리한 생활시설을 갖추도록 노력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도시에 부자나 중산층들만 살 수 없다. 도시는 여러 소득계층, 여러 연령층, 여러 직업군이 함께 살고, 만들어가는 공간이다.”(305쪽) 무엇보다 빈곤을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가난이 사라지지 않는 한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집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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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르칠 수 없는 것을 가르치기 - 제천간디학교 교장 이병곤의 교육에세이 (커버이미지)
    [사회]가르칠 수 없는 것을 가르치기 - 제천간디학교 교장 이병곤의 교육에세이
    • 이병곤 지음
    • 서해문집
    • 2024-02-19

    ‘먼저 온 미래’, 대안학교는 어떻게 공교육의 젖줄이 되었나제천간디학교 교장 이병곤의 교육에세이. 30여 년간 교육 현장에서 다양한 교육혁신 정책을 연구․실천해온 교육전문가로서, 현장과 이론을 넘나드는 경험과 깊은 성찰을 담은 그의 첫 에세이다. 학교 민주주의 실행, 대학입시와 시험에서 벗어난 ‘자유’롭고 창발적인 배움, 프로젝트 학습과 여행․노동․예술을 통한 학습, 통합 학년 실험과 생태주의 실현 등 대안학교 현장의 다양한 교육실험들이 생생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지금 여기’ 교사와 학생과 부모 모두에게 꼭 필요한 ‘생각’들을 단단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들은 교육의 본질에 대한 깊고 근본적인(radical) 성찰과 담대한 상상으로 우리를 이끈다.“보편 공교육이 ‘대안’교육에 진 빚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이런 놀라운 교육이 세상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현실에서 보여준다는 것이다”충북 제천시 월악산 자락, 100여 명의 학생과 스무 명 남짓한 교사들이 살아가는 6년제(중고교 통합) 기숙형 비인가 대안학교. 저자가 지난 6년간 이곳 제천간디학교 교장으로 있으면서 무엇보다 주목한 것은 보편 공교육과 대안교육의 ‘만남’이었다. 그의 학교에는 한 해 내내 많은 ‘손님’들이 찾아온다. 공교육은 혁신학교를 기획하고 실행할 때, 미래학교 관련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교사들의 창의력을 자극하려 할 때, 교육과정을 새로 개편하려 할 때마다 대안학교를 탐방하고 그 사례들을 참조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지난 수년간 학교로 찾아오는 교육 연구기관이나 교육청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늘 분주했다.실제로 오늘날 보편 공교육이 채택하고 있는 여러 특징은 과거 서구 사회의 대안학교에서 ‘선도적 실험’을 거쳐 받아들인 제도와 다름없다. 남녀공학, 15명 이내 학급 편성, 체벌 금지, 프로젝트 중심 학습, 아동의 흥미와 선택 존중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처럼 대안학교는 인간의 본성, 학습 방식, 평등주의, 민주주의와 자치 능력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해왔고, 그 교육적 실현 가능성을 입증해왔다. 교과목 대신 학습 방법을, 경쟁 대신 협력을, 강제 대신 자발성을 강조하면서 어떻게 그것을 실현할 것인가 고민해온 공간이 바로 대안학교였다. 시험에 나오지는 않지만 인간이 가져야 할 중요한 특성과 자질을 발현하도록 교육과정과 학교 문화를 조직․운영하려고 애써온 곳도 대안학교 현장이었다. 그러나 대안학교는 단지 위기에 처한 공교육 출신 학생을 ‘위탁’하는 곳도 아니고, 필요할 때마다 ‘혁신 사례’를 수집해 공교육에서 참조만 하는 대상도 아니다. 공교육과 대안교육은 서로에게 듬직한 협력자가 되어주어야 한다. 학교와 교육과정의 다양성을 열어두고, 국가는 교육혁신과 실험을 자발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대안학교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원해야 한다. 능력주의 시대에 교사라는 존재현재 한국의 대안교육은 위기를 맞고 있다. 이제껏 우리 사회는 대안교육이 무엇이고, 어떻게 펼쳐나가야 하며, 실제로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를 깊이 있게 다루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안교육 현장에서는 당장 아이들과 씨름하며 실천을 해야 하기에, 모든 일을 몸으로 겪고 견디면서 방법을 찾아나서야 했다. 그 구체적이면서도 생생한 사례가 이 책 곳곳에 드러난다. 이 책에 담긴 각각의 이야기는 조각난 사금파리같이 독자적으로 빛나면서도, 그 경험의 파편들이 합체해 마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영롱한 빛을 낸다. 한 시골 학교 교장의 몸을 투과한 그 빛은 여러 갈래로 다시 파열하며 세상에 말을 건넨다. 대안학교에서 행하는 교육실험은 여전히 우리나라 교육을 바꿔갈 동력이며, 그곳에서 쌓은 귀중한 데이터를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창조적으로 변용할 때라야 대한민국 교육혁명의 씨앗이 싹튼다. 여기 담은 글들이 오늘도 어려운 걸음을 이어가고 있는 현장의 교육실천가들에게 소박한 징검다리라도 되길 소망한다.“이게 아니라고, 멈추라고,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라고 말하기는 쉽다. 멈췄다 치자. 한 번도 자신이 그 자유를 경험해보지 못한 부모와 교사는 멈춘 자리에서 무얼 할지 막막하다. 이 책은 새로운 길을 떠나려는 사람, 혹은 그 여정을 시작한 사람에게 건네는 든든한 선배의 다정한 조언이다. 보편 공교육이 ‘대안’교육에 진 빚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이런 놀라운 교육이 세상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현실에서 보여준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 청소년이 되어 이런 학교에서 이런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_ 이향규 (《후아유》 저자, 런던 한겨레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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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르침의 미학 - 수업예술론 (커버이미지)
    [사회]가르침의 미학 - 수업예술론
    • 이재남
    • 메이킹북스
    • 2024-02-19

    문제는 ‘좋은 수업’이 아니라 ‘행복한 수업’이다.(행복한 수업은 반드시 좋은 수업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교사에게 수업이란 무엇인가?’ ‘수업은 기술인가? 예술인가?’ 해방 이후 미국에서 수입된 기술주의 수업관에 위해 장악된 수업 철학에 이의를 제기한다. 수업을 계량화하고 표준화하고 일반화 하려는 일체의 움직임에 반대한다! 전교조 현장 활동가의 눈으로 바라본 수업에 대한 유쾌한 반란! 수업이 예술인 5가지 이유를 통해 그동안 기술주의 수업담론에 결정적 타격을 가하다! 행복한 수업을 꿈꾸는 교사를 위한 이론적 필살기!은 기존의 수업관행에 똥침을 날린다은 기존의 기술주의적 수업관으로 포착되지 않는 수업의 또다른 영역에 대한 탐구이다. 수업의 양태 분석을 통해 교사의 존재 방식을 질적으로 탐구하고,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본질적 질문을 끊임없이 유도한다.저자는 ‘수업명인’, ‘수업달인’, ‘수업연구대회’ 등의 각종 수업기술주의 담론에 의해, 모든 수업이 획일화되고, 표준화되어서 더 이상 학교가 창조의 공간이 되지 못한 이유를 수업기술주의 담론의 범람에서 찾는다.에서 말하는 수업이 예술인 5가지 이유첫째, 이다. 저자는 ‘안다’와 ‘느낀다’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프로세서라고 주장한다. 이것을 분리하는 순간 좁은 의미의 인지관에 경도되어 수업의 문제를 지식전달의 문제로 전락시킨다고 말한다.둘째, 이다. 인간이 자기 외부와 소통하는 방식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문자 중심의 소통이 전부가 아니다. 노래, 춤, 영감, 눈빛, 손놀림, 놀이, 몸짓, 감상, 희로애락, 이미지 등 셀 수 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음에도 우리 교실에는 획일적인 전달과 수용만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셋째, 이다. 실제 수업은 계산된 각본에 의해 진행될 수 없는 인간의 다양한 양태가 전개되는 현장이기 때문에 예술가가 갖는 ‘우연성, 직감, 감식안과 대응’이라는 기본요소를 갖고 있다.넷째, 이다. 수업을 공장의 기계처럼 찍어낼 수 없는 것은 수업상황이 물리적 재료처럼 정량적이지 않고,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이며 통찰을 필요로 하고 심상적 요소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다섯째, 이다. 목표는 필연적으로 과정을 종속시키지만, 수업은 예술가의 작업과정처럼 기계적 순서화가 불가능한 과정 중심의 대표적인 양태가 수업이다. 수업현상 속에는 손에 잡히지 않는 예술적 수완에 의해서만 인식 가능한 세계가 있다.결론적으로 저자는 참다운 교사는 ‘인간이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다는 확고한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아야 하고, 그 과정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진정성 있게 바라볼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과정 중심의 교육철학자 존듀이(John Dewey)와 심미적 교육과정 학자 아이스너(Eisner)의 주장을 바탕으로 목표 중심 교육과정 학자 타일러(Tyler)의 주장에 반기를 들다.타일러는 미국의 대표적인 교육과정 학자로, 우리나라 교육학 1세대들이 미국에서 그대로 답습해와 우리 교육과정의 기초를 놓는데 중요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학자다. 지금도 현장에서는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운영하는데 타일러의 목표 중심의 체계와 이원분류의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미 선진국의 교육체계는 학습자 중심의 개별화 교육과 창의성과 가능성을 발현시키는 문제를 중심으로 타일러 주의의 극복을 실현해 내고 있으나, 우리 교실은 여전히 집단적 지식전달의 효과성에만 연연하고 있다. 존듀이의 과정 중심의 순환적 사고와 아이스너의 심미적 교육과정 이론은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진보 교육의 철학적 토대를 만드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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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가족을 구성할 권리 - 혈연과 결혼뿐인 사회에서 새로운 유대를 상상하는 법
    • 김순남 지음
    • 오월의봄
    • 2024-02-19

    가족은 어떻게 저항의 언어가 될 수 있을까?혈연과 결혼뿐인 사회에서 새로운 유대를 상상하는 법급격한 가족변동의 시대다. 매년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아이들은 점점 더 적게 태어난다. 많은 사람이 더 이상 결혼을 필수로 여기지 않고, 기존의 가족규범을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는 것 또한 놀라운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성 부부와 두 자녀로 구성된 4인 가족의 신화는 과거로 저문 지 오래, 1970년 5.2명이던 평균 가구원수는 매년 꾸준히 감소하며 2021년 2.3명이 되었고(통계청, 〈인구총조사〉, 2021), 취업-연애-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생애주기의 ‘정상성’이 허구라는 걸 알아챈 사람들은 더 이상 ‘그 가족’을 중심으로 생애경로를 계획하지 않는다.하지만 한국의 사회제도는 거의 대부분 ‘그 가족’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한국사회가 상정하는 ‘시민’이란 이성애규범적인 가족중심 시민모델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기본단위가 개인이 아닌 가족으로 상상되고, 그 가족에게 사회적ㆍ경제적 생존이 떠맡겨지는 사회에서 제도는 철저하게 ‘정상가족’만을 보호하고 ‘권장’한다. 이런 사회에서 시민들은 ‘정상가족’을 매개로만 생애안정성을 상상하도록 강요받는다. 당신은 가족을 구성할 수 없다고, 그런 관계는 가족이 아니라고 말하는 기준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이 책의 저자이자 가족구성권연구소 대표인 김순남은 바로 그 지점에서 가족을 저항의 언어로 사유해야 한다고 말한다.“저항의 언어로 가족을 사유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던 존재를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던 목소리를 들리게 함으로써, 시민의 삶을 고립화하고 단절해온 이성애규범적인 가족중심 시민모델을 질문하고 해체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기존의 가족규범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개념으로 가족구성권을 사유하는 이 책이 새로운 관계, 돌봄, 연결을 상상하고 조직하는 데 힘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13쪽)가족구성권연구소의 정의에 따르면, 가족구성권은 “다양한 가족의 차별 해소와 모든 사람이 원하는 가족ㆍ공동체를 구성하고, 차별 없는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이다. 즉, 단순히 다양한 관계를 가족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데서 그치는 논의가 아니라, 가족을 둘러싼 여러 갈래의 복합적인 차별 해소에 대한 접근을 요청하는 문제다. 근본적으로는 정상가족을 매개로 생애안정성을 상상해왔던 여러 축을 해체하고 재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가는 어떻게 특정 형태의 ‘가족’만을 ‘권장’하는가? ‘정상가족’은 ‘정상시민’과 어떻게 연동되어 있는가? 이 책은 혈연ㆍ결혼중심의 가족주의가 공고한 한국사회에서 가족을 저항의 언어로 삼아 새로운 유대를 상상하자고 청한다.돌아갈 수 없는, 돌아가서도 안 되는 ‘그 가족’한국사회에서 남남이 ‘가족’을 만들 수 있는 방법, 다시 말해 혈연이 아닌 시민과 시민이 결합할 수 있는 방법은 결혼뿐이다. 그마저도 이성만이 가능한 현실. 이처럼 시민결합의 방법이 제한되어 있으니 많은 시민은 제도와 불화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가 보기에 1인 가구의 증가는 이러한 불화의 대표적인 ‘현상’이다. 즉, 저자는 오늘날 극심한 가족변동의 상황을 말 그대로 ‘변동’이라고 보기보다 근대적 이성결혼/가족에 기반해 가부장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국가ㆍ사회와 이를 거부하는 시민들 사이의 불화로 본다. 국가는 여전히 경제적ㆍ사회적 생존의 책임을 ‘정상가족’에 기반한 가족단위에 전가하고자 하지만, ‘가족’에 대한 인식이 확연히 달라진 시민들은 점점 더 협소하고 폐쇄적인 유대의 방식과 가족의 책임으로만 전가되는 사회불평등에 의구심을 품고 새로운 생애경로를 적극적으로 모색하며 기꺼이 불화하기를 선택한다는 것이다.그러니 아무리 신혼부부 지원정책, ‘저출산’ 지원정책을 펴도 혼인율과 출생률이 오르지 않는다. 시민들은 사회구조적 불평등이 교차하는 장으로서 가족제도와 불화하며 ‘정상가족’ 밖의 생애경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인데, 국가는 이를 단순히 경제적 부담 등을 이유로 한 결혼과 출산의 ‘지연’으로 본다는 게 문제다. 저자는 국가가 여전히 과거 ‘그 가족’으로의 회귀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며, 지금의 가족변동은 단순히 가족형태의 변화가 아니라 가족 안에서 교차하는 각종 불평등에 대한 전방위적인 접근을 요청하고 있다고 진단한다.무엇이 시민적 유대를 가로막는가?‘가족의 범위’를 규정하는 「민법」 제779조가 박탈하는 것저자는 분명하게 말한다. 1인 가구와 비혼의 증가는 ‘고립’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증가가 아니라고 말이다. 통계적으로는 1인 가구라 할지라도, 실질적인 삶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상호돌봄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무수히 많은 시민이 이미 예전부터 법적 가족을 넘어선 다양한 방식의 관계망을 만들며 서로 돌보고 의존하고 신뢰해왔으나, ‘정상가족’에 기반한 제도와 규범이 그러한 유대를 가로막고 있다고 강조한다.그러한 가족규범의 핵심으로 저자는 「민법」 제779조에 주목한다. ‘가족의 범위’를 규정하는 이 조항은 함께 삶을 살아가는 실질적인 상호돌봄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데 핵심적인 근거로 작용하며, 관계의 위계를 만들고 제도적으로 차별하는 토대가 되고 있다. 책에서도 인용하는 해당 조항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민법」 제779조(가족의 범위)① 다음의 자는 가족으로 한다.1.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2.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② 제1항제2호의 경우에는 생계를 같이하는 경우에 한한다.저자는 이처럼 가족의 범위를 규정하는 법이 실질적인 다양한 상호돌봄관계를 포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개별 법에서 ‘가족’의 범위를 확장할 수 없도록 하는 제약으로도 작용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민법」의 가족규정이 한국 현행법 조항 중 ‘가족’을 언급하는 240개 조항에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하며, 이 조항을 중심으로 주거, 의료, 돌봄, 연금, 상속, 재난 시 보호 등 삶의 전 영역의 보호 여부가 결정된다고 서술한다. 결국 어떠한 관계가 ‘가족’인지를 그 관계를 맺는 당사자가 정할 수 없는 사회에서 저자는 누군가의 시민권이 계속해서 박탈되고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원본 없는 가족/친척 만들기새로운 상호의존의 관계망을 ‘발명’해내는 사람들그러나 이처럼 차별적인 가족제도와 ‘그 가족’ 없이는 생존이 불가하다시피 한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 속에서도 기꺼이 ‘나’로서 살고 ‘나’로서 연대하는 상호의존의 관계망을 ‘발명’해내며 생애경로를 개척해온 사람들이 있다. 저자는 누구보다 가족제도의 불평등을 가장 먼저 체감하고 저항한 이들로서 ‘퀴어한’ 이들의 삶과 실천에 주목하며, ‘뒤처진 관계’이자 ‘뒤처진 삶’으로 여겨진 이들의 이야기에서 사회를 재구성하는 토대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그렇게 이 책에는 자신만의 생애경로와 상호의존의 다양한 관계망을 개척하고 나선 13명의 목소리가 함께 담겼다. 장애여성 1인 가구 A, 친구관계 2인 가구 B, 이성커플 동거 가구 D, 동성커플 동거 가구 F, 주거공동체 내 1인 가구 J 등이 그러한 목소리의 주인공들이다. 저자는 가구원수도, 가족형태도, 상호의존의 계기도 제각각인 이들의 목소리를 가족구성권에 대한 논의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가족은 무엇이다’라는 단일한 정의를 피하고 다양한 관계성 그 자체의 가시화를 시도한다. 가족을 저항의 언어로 사유한다는 것이 새로운 가족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저자는 다양한 관계성들의 차이를 발굴하고 확장하며 새로운 관계망을 인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이처럼 가족을 구성할 권리가 말하는 ‘가족’이란 「민법」 제779조에서의 규정처럼 어떠한 형태, 어떠한 관계로 규정되는 명사적 정의가 아니다. 저자는 가족사회학자 데이비드 모건(David Morgan)이 말한 ‘가족실천’의 개념을 참고하여, 동사로서의 ‘가족’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가족실천은 가족 안에서 현재 누가 무엇을 하는지를 중심으로 가족 의미의 형성을 포착하는 것이며, 어떤 가족되기를 수행하는지를 가족의 의미로서 가시화하기 위한 개념이다. 즉, 모든 가족에게 적용될 수 있는 일정한 가족모델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관계를 맺는 방식에 따라서, 가족관계를 수행하는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가족의 의미가 구성되는 것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55~56쪽)‘연결의 의지’를 권리의 토대로,우리에게는 자유롭게 유대할 권리가 있다!가족구성권의 논의는 결국 가족이 있든 없든 누구나 차별받지 않도록 주거, 교육, 의료 등 모든 면에서 사회적 안전망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또한 시민이 어떠한 관계로 가족을 꾸리든 동등하게 그 지위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국가는 여전히 ‘시민’의 삶을 취업-연애-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단일한 생애주기의 ‘정상성’ 안에 놓인 가족 안의 것으로 상정하지만, 여러 통계나 시민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드러나듯 생애주기의 ‘정상성’은 허구에 가깝다. 한때는 정상성 ‘안’에 존재할지 몰라도, 다른 한때는 정상성 ‘밖’으로 이동하는 것이 오늘날 너무나 흔한 시민들의 삶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질문의 방향을 ‘가족’이 아닌 ‘사회’로 돌려야 한다고 제안한다. ‘무엇이 가족인가’가 아니라, ‘어떠한 사회가 시민적 유대를 가능하게 하는가’로 말이다.우리는 어떠한 가족형태에 속하든 고립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 누구나 시민적 유대가 가능하며 충분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사회,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관계를 맺을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질문해야 한다. 가족구성권은 시민과 시민이 자유롭게 유대할 권리를 기본적인 시민권으로서 보장하라는, 어찌 보면 매우 간단한 요구다. 무엇이 가족이고 가족이 아닌지에서 벗어나 어떤 사회가 시민적 유대를 번성하게 하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돌봄 공백, 사회적 고립의 증가, 그리고 국가가 그토록 혈안이 된 저출생까지도 조금씩 그 해답이 보일 것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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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을 폐지하라 -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세계를 상상하는 법 (커버이미지)
    [사회]가족을 폐지하라 -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세계를 상상하는 법
    • 소피 루이스 지음, 성원 옮김
    • 서해문집
    • 2023-12-27

    대안 가족은 대안이 될 수 없다‘가족’은 대안을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우리는 원한다,가족의 대안 따위는 없다고 말하는 세상이 아니라,가족이 없는 것이 또 하나의 재앙인 세상이 아니라,가족이 아니고도 우리 서로를 돌보고 환대해줄 세상을.팬데믹이 이어지는 동안 국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명령했다. “자택에 머무십시오.”이 명령에는 적어도 두 가지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 하나는 모두에게 자택이, 즉 격리 가능한 공간이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모두에게 가족이, 즉 자가 격리를 하더라도 돌봐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다(자택은 누구의 공간인가? 바로 가족의 공간이다). 이런 명령에 가족 구성원들이 전업주부처럼 집 안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은 고려되지 않았다. 가족이 돌봄은커녕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사실도. 그렇다면 가족이 없는 이들은? 그들은 정책에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이다. 그리하여 봉쇄의 시대에 많은 이들이 끔찍한 가족과 같이 지내는 것보다 더 나쁜 운명을 맞닥뜨렸으니,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 식료품, 약, 생필품 등을 전부 배달 주문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은 환경에 있는 이들(배달비를 낼 여력이 없을 수도, 소도시에 거주할 수도, 홈리스일 수도 있다)은 홀로 앓았다. 팬데믹은 사회가 돌봄을 사적 책임으로 밀어넣은 결과를, 즉 돌봄이 부재하다시피 취약해진 모습을 비참할 정도로 선명하게 보여주었다.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가족을 폐지하자고?이 말은 어떤 반응을 끌어내기도 전에 사고를 정지시킬지 모른다. 가족은 마치 우리가 숨 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며, 주택 정책·의료·교육·유서·법원·연금 등 가족 제도를 유지시키는 기술이 어디에나 포진해 있다. 가족은 (온갖 재난 서사가 보여주듯이) 다른 모든 게 무너져 내렸을 때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라는 꿈에 둘러싸여 있는 장소다. 한편으로 그곳에서는 은밀한 학대와 성폭력과 갈취가 가해지며, 로맨틱한(물론 이성애 규범적인) 환상이 아직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장소이자, 공공연한 계급 결합이 이루어지는 장소다. 이 다층적인 의미만큼이나 가족을 둘러싼 담론은 걷어차일 만큼 많고 (그만큼) 단단하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이 폐지할 수 있는 무언가라고는 생각하기 어렵고, 폐지될 수 있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럽게 만든다.분명 ‘가족을 폐지하라’는 말이 어떤 부분에서는, 가령 혈연 공동체가 중요한 역할을 했던(할 수밖에 없었던) 유색인종의 역사에서, 혹은 가족 구성권을 요구하는 퀴어 공동체에게, 혹은 시리아나 예멘,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혈육과 생이별을 하고서 난민캠프에서 지내는 이들에게는 기상천외한 헛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가족 폐지보다는 확대가족이나 대안가족을 요구하는 게 더 나을 거라고 말할 것이다. 가족을 아예 폐지하자는 주장은 너무 위험하고, 전략적이지도 못하고, (부정적인 의미에서) 유토피아적일 뿐이라고 지적하면서.여기서 《가족을 폐지하라》는 ‘우리가 폐지하기를 주장하는 가족은 백인-부르주아-핵가족이라고!’ 같은 식으로 구구절절 설명하는 쪽을 택하지 않는다. 규범적인 텍스트에서 훌쩍 떨어져 서 있는 이 책은, 수많은 반론들에 다시 수많은 반론들로 맞서지도 않는다. 백인 지배계급과 흑인 프롤레타리아의 가족관계가 어떻게 다른지 파고들면서(2장), 또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자들에서부터 21세기 트랜스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가족 폐지론의 역사를 빠르게 조망하면서(3장) ‘가족’이 부르주아 경제의 축소판임을, 그것이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돌봄을 사적인 문제로 치부한다는 것을 내포한 단어임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을 되돌린다. 가족을 폐지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지.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럼 가족 말고 다른 어떤 대안이 있느냐고. 우리 모두 알다시피, 의료 노동자들과 돌봄 노동자들은 기진맥진한 채 나가떨어지지 않았느냐고. 이는 사실상 질문이 아니라 대안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언이다. 돌봄 시설이 문을 닫을 때,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아이들은? 환자들은? 가족이 없으면 누가, (혹은) 무엇이 이들의 삶을 책임지겠는가? 아무도,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이런 식의 질문은 나쁜 질문이다. 우리는 비인간 동물이 동물원 밖에서 지내는 게 더 낫다고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아무리 대안적인 서식지가 희소해지고, 심지어 동물들이 동물원의 잔혹한 환경에 익숙해졌다 해도 말이다. 마찬가지로 가족에서 벗어나, 가족이 아닌 다른 대안을 세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가족이 유일한 해결책인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 아니, 가족이 유일한 해결책으로서의 역할도 잃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 역시 고통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좀 더 나은 삶이 어떻게 세워져야 하는지 질문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그리고 그 좀 더 나은 삶이 “확장된”, “확대된”, “혈연과 무관한” 온갖 대안적인 가족이 있는 자리가 아니라 가족이 없는 자리, 그것이 아예 무너진 자리에 있을 거라고 상상해볼 수는 없을까. 가족이 빠져나간 자리에 놓을 다른 무언가를 상상하는 대신에, 아무것도 없음을 상상해볼 수는 없을까? 《가족을 폐지하라》는 바로 그런 사고 실험이자,혁명적 제안이며, 선언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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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자도사 사회 (커버이미지)
    [사회]각자도사 사회
    • 송병기 지음
    • 어크로스
    • 2024-02-19

    “존엄한 돌봄과 임종을 희망하는 사람은 돈이 많거나 운이 좋아야 한다그렇게 사람들은 각자도생, 각자도사한다”의료인류학자 송병기가 한국 사회 생애 말기와 죽음의 현실에 대해 던지는 묵직한 질문들 - 집은 좋은 죽음을 보장하는 장소인가?- 노인은 국가의 짐인가?- 왜 호스피스는 ‘임종 처리’ 기관이 되었나?- 콧줄 단 채 생의 마지막을 맞아야 할까?- 왜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죽음을 앞당기고 싶어 할까?의료인류학자 송병기가 터부와 혐오를 넘어 우리의 일상과 공동체를 ‘죽음’이라는 렌즈로 들여다본다. 노화·돌봄·죽음을 연구하는 의료인류학자로 생애 말기 현장 연구를 해온 저자는 《각자도사 사회》에서 집, 노인 돌봄, 호스피스, 콧줄, 말기 의료결정에 이르기까지 생애 말기와 죽음의 경로를 추적한다. 나아가 무연고자, 현충원, 웰다잉 등의 키워드에 질문하며 죽음을 둘러싼 국가와 개인의 관계, 관련 정책, 불평등 문제를 보여준다. 우리가 경험하는 죽음의 문제는 주사위 놀이 같다인류학은 다른 사회과학과 달리, 연구자가 연구의 대상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사는 ‘현장’에 들어가 관찰하고, 그들의 삶을 해석하는 방법론을 사용한다. 프랑스·모로코·일본에서 의료 현장 연구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저자는 한국 요양시설과 병원, 노인 현실을 마주하며 죽음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과 관점들을 만나게 되었다. 모두 죽음에 관심이 많았지만, 모두 각자 알아서 죽음에 맞서고 있었다. 예컨대 생애 말기 돌봄 경험은 보호자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들은 노부모를 돌볼 때 무엇을 참고하고 믿고 따라야 하는지에 대한 모든 문제를 ‘알아서’ 했다. 친족 자원을 동원하고 사보험의 도움을 받고 소문과 인터넷 정보를 참고하면서 노부모를 집에서, 응급실에서, 대학병원에서, 요양병원에서, 마지막에는 요양원에서 돌보고 있었다. 꾸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집이 아닌 요양원에 모셨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한 요양원 노인은 “더러운 꼴 안 보고 깔끔하게 죽고 싶다”며 눈물을 보였다. 어떤 요양보호사는 바쁘다는 이유로 자신도 모르게 노인을 학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요양병원에서 수년째 어머니의 간병을 하던 아들 내외는 “고령화 시대에 안락사 제도는 꼭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책을 쓰게 된 저자의 문제 의식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그는 책 서두에서 한국 사회에서 존엄한 노년과 죽음은 돈이 많거나 운이 좋은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죽음의 문제는 마치 주사위 놀이 같다. 먼저 ‘보이지 않는 손’이 노화, 질병, 돌봄, 죽음을 새긴 주사위를 던진다. 그 결과는 ‘우연히’ 누군가의 일상에 들이닥친다. 각자 그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 또 다른 주사위를 던진다. ‘행운’을 기대하면서 던지는 주사위다.”언제부터 죽음이 개인 능력과 운에 달린 문제가 되었을까오늘날 우리는 개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최대한 천천히 늙기를, 덜 아프기를, 깔끔하게 죽기를, 착하고 경제력 갖춘 가족이 나를 돌보기를, 다정하고 친절한 의료진을 만날 수 있기를, 말 잘 통하고 헌신적인 간병인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주사위 던지기의 결과가 나쁘거나, 더 이상 던질 주사위가 없다면 어떻게 할까? 언제부터 죽음은 개인 능력과 운에 달린 문제가 되었을까? 우리의 삶과 죽음이 주사위 던지기와 다름없다면 그건 좋은 사회일까? 얼핏 보기에 이 주사위 놀이는 평등한 것 같지만 사실은 불평등한 전제를 깔고 있다. 불평등한 삶이다. 저자는 집부터 호스피스에 이르기까지, 생애 말기 우리가 거치게 되는 장소와 의료 과정을 보여주고 죽어가고, 돌봄을 받고 돌봄을 행하고, 고통받고 고립되기도 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열악한 주거 환경 속 사회적 자본이 빈약한 노인에게는 집에서 죽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 모든 인간은 의존적인데 왜 노인만 의존적인 존재처럼 딱지를 붙이는지, 정부의 정책은 노년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보다 취약한 삶에 ‘적응’하도록 설계된 것은 아닌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아가 환자의 상태와 삶의 질을 ‘충분하게’ 향상시키지 않고 수명만 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연명의료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느냐가 아니라, ‘언제까지’ 살다 죽게 할 것인지 합의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생애말기와 안락사 논쟁의 장까지 이끈다. 죽음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전환하는 상상력그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지금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죽음은 의료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의 문제에 가깝다고 진단한다. 죽음은 개인적인 일인 동시에 내가 사는 일상, 사회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문제며, 환자, 보호자, 의료진의 이야기로 국한할 문제도 아니다.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는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 누구에게나 충분한 돌봄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스템과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언론 보도에 등장하는 명의, 신약, 의료 기술, 자기계발 담론에 귀 기울이는 만큼 왜 사람들이 일하다가 죽고, 가난해서 죽고, 학대로 죽고, 고립으로 죽고, 차별로 죽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사건 사고’가 어떻게 나의 노화, 질병, 돌봄, 죽음과 연결되는지 살펴봐야 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죽음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전환해볼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보편적이고 존엄한 죽음을 상상하다 책 전반부에서 생애 말기 각자도생하고 각자도사하는 현실을 분석하고 근본적인 원인을 밝힌다면 후반부에서 저자는 우리 곁에 있지만 의식하지 않았던 ‘죽음’의 키워드들을 하나씩 꺼내 죽음에 대한 당연하지 않은 질문들을 던진다. 일상의 평화에 도움이 되는 의례가 될 수는 없을까 제사에 관해 묻고, 생전 갈 데 없는 삶과 사후에도 갈 곳 없는 사람들인 무연고자의 죽음을 추적하고 애도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국가가 나서서 기억하려는 ‘공적인’ 죽음은 무엇인지, 그게 아닌 죽음은 어떻게 지워지는지 현충원의 사례를 들어 질문하고, 코로나 팬데믹 과정에서 빚어진 죽음에 대한 관심과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람에 대한 무관심을 대비해 보여주기도 한다. “정부의 방역은 ‘평등한’ 생명과 죽음을 선험적으로 전제하고 있지만, 오히려 현존하는 ‘불평등’한 생명과 죽음을 가리고 더 악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죽음에 호들갑을 떨고, 다른 쪽에서는 죽음에 침묵하는 이 양극적 현실이 불평등한 삶의 조건과 사회의 생산방식, 그 해법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죽음을 이해하는 일은 삶을 이해하는 일죽음은 삶의 끝이 아닌 일부다. 죽음을 이해하는 일은 삶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죽음에 관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한 지금,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죽음과 삶, 질병과 노화, 돌봄의 윤리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존엄한 죽음은 어느 장소에만 있는 것도,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존엄한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는 과정에, 그리고 두툼한 생각으로 채워진 해답지를 만드는 데 이 책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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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 - 어떤 애도와 싸움의 기록 (커버이미지)
    [사회]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 - 어떤 애도와 싸움의 기록
    •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 기획.채록
    • 나무연필
    • 2015-11-30

    “아주 간단한 사건이다. 여성 혐오다. 그리고 5천 년의 역사는 쉽게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 누가 언어를 전유할 것인가. 이번 사건으로 여성 혐오가 여성의 입장에서 ‘독점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는 피해자의 권리이자 고인에 대한 예의다.” ___ 정희진(여성학 강사)“사건을 분석하는 전문가의 언어도 의미가 있지만 수많은 추모객이 쏟아낸 진심 어린 말들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이 더 소중한 일이다. 평범한 이들의 집단적 성찰이 이뤄지고 있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차별과 인권 등 우리 사회의 윤리를 돌아봐야 한다.” ___ 권명아(동아대 교수)1004개의 포스트잇, 1004개의 목소리이들이 보여주는 우리 시대 여성의 자화상2016년 5월 17일 새벽 1시, 23세의 한 여성이 서울 서초동 인근의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흉기에 찔려 살해당했다. 그녀를 살해한 남성은 “사회생활에서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해 범행을 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다음 날 오전부터 그녀가 살해된 곳 인근의 강남역 10번 출구에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포스트잇 추모’가 시작되었다. 출구의 외벽은 이 사건과 관련한 글이 담긴 포스트잇으로 뒤덮였고, 화환도 줄을 이었다. 서울 한복판의 강남역 10번 출구는 그렇게 피해자를 추모하면서 한국 사회의 여성 혐오에 대한 문제의식을 표출하는 상징적인 공간이 되었다.5월 23일, 우천이 예보되면서 이곳의 포스트잇은 보존을 위해 서울시청 지하 1층 시민청과 서울시여성가족재단으로 옮겨졌다.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은 이 포스트잇이 옮겨지기 직전, 강남역 10번 출구의 외벽에 붙은 포스트잇 1004건을 일일이 촬영한 후 문자화하는 전수 조사를 진행했다. 층층이 포개진 포스트잇들을 모두 갈무리하기는 어려웠지만,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것들은 최대한 채록했다.그 많은 포스트잇은 무엇을 말하는가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내용은 ‘추모’였다. ‘고인’(273번)의 ‘명복’(281번)을 ‘빕니다’(288번). 이것이 강남역 10번 출구를 방문한 이들이 가장 많이 드러낸 애도의 표현이다. 이를 포함해 억울하게 숨진 피해자의 넋을 기리는 메시지가 전체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했다. 다음으로는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는 자조와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이 많았다. “그 시간, 그 자리에 없어서 살아남았다”는 안도인 동시에 “당신이 죽었고 내가 살아남았다”는 부채 의식이 동시에 표출되었다. ‘살아남았다’는 단어는 132차례나 쓰였다. 희생자에게 ‘미안하다’(111번), ‘죄송하다’(36번)고 한 횟수도 합쳐서 100차례가 넘었다. “남성으로서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를 빕니다” 같은 남성들의 자기반성도 엿보였다.한편 많은 여성들이 이 사건에서 ‘공포’를 느꼈다. “화장실도 무서워서 못 가겠다”며 두려움을 토로한 것은 50차례를 넘었다. 평소에 강남역을 오가던 시민들에게는 자신의 일상적 공간이 누군가에게 ‘죽음의 장소’가 되었다는 것이 두려움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번 사건을 여성 혐오로 해석하는 시선도 두드러졌다. ‘여성 혐오’(116번·‘여혐’ 포함)라는 표현이 직접 불거져나왔다. “이는 절대 ‘묻지마’ 살인 사건이 아니라 여성 혐오 살인 사건입니다” “명백한 여성 혐오로 살인이 일어났다. 단지 만만해보이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등이 대표적이다. 여성이 약자로 자리매김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실 속에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는 외침도 눈에 띄었다. 이 맥락에서 ‘남자’(187번·‘남성’ 포함)들은 “여성 혐오를 부정하는 눈뜬장님들”에 비유되기도 했다.시민들은 “여성 혐오를 멈춰주세요. 공감할 수 없다면 침묵이라도 해주세요”라며 ‘살해’(59번)의 두려움을 털어놨고, ‘피해자’(50번)에 감정이입했다. 평소의 ‘차별’(27번) 경험을 털어놓은 여성도 많았다. 경찰의 발표처럼 ‘묻지마’(22번) 사건으로 해석하는 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언제든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잠재적 피해자’로서 느끼는 두려움이 여성들을 연대하게 했다. 이들의 두려움을 이해하는 일부 남성들 역시 함께했다. 포스트잇을 남긴 시민들은 “당신의 죽음이 결코 또다른 ‘한 여자’의 죽음이 되지 않도록 기억하고 싸우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잊지 않겠다’(24번)는 다짐은 물론 ‘안전’(46번)을 위해 ‘노력’(43번)하고 ‘행동’(16번)하겠다는 약속이 줄을 이었다.가장 오래된 문명, 여성 혐오그렇다면 이번 살인 사건으로 불거진 ‘여성 혐오’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해제를 쓴 정희진은 문명사의 관점에서 여성 혐오가 인류 역사의 기반이라고 본다. ‘남성이 정신이라면 여성은 육체’고 ‘남성이 이성이라면 여성은 감정’이며, 정신/이성은 몸/감정보다 우월하다는 가부장제가 인류 문명의 바탕이라는 것이다.그렇다면 왜 이 문제는 사회에 가시화되지 않는 걸까? 정희진은 시공간의 조건이나 여타의 구조와 무관하게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정당화, 정상화되어왔기에, 즉 다른 사회적 맥락 없이 역사를 통틀어 지속적으로 여성 혐오가 이뤄져왔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인식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본다. 또한 이번 사건을 남성들 간의 계급 격차가 여성에게 전가된 것도 아니고, ‘묻지마 폭력’은 더욱 아니며, 남성의 실업과 열등감의 표출도 아니고, 여성의 안전 문제도 아니며, 가장 위험한 해석, “정신병자의 우발적 사건”은 더더욱 아닌, 그야말로 순수한 ‘여성 혐오 사건’으로 규정한다.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성 혐오가 여성의 입장에서 해석될 수 있을까? 이는 피해자의 권리이자 고인에 대한 의무이며, 이 언어를 전유하는 것이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일 것이다.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기록물로서의 의미이 채록물들은 교정만을 거쳤으며, 순서의 배치에 의도를 개입시키지 않았다. 여기 수록된 글은 많은 시민들이 각자의 마음을 담아 표현한 목소리이니 순서와 무관하게 읽어주시기 바란다. 결이 다른 의견들도 제각각 표출되어 있으나, 이 모든 것이 강남역 10번 출구에 담겨 있었던 것들이다. 중복되는 글 또한 그만큼 절박하게 반복된 목소리라 판단해 거르지 않았다. 아카이빙으로서의 성격이 분명한 콘텐츠인 만큼, 각 포스트잇마다 넘버링을 해두었다.수많은 시민들이 직접 강남역 10번 출구를 찾아와 남긴 글들을 모은 것인 만큼, 이 책의 필자는 그곳에 찾아가서 글을 남겨준 이들이다. 여러 사람의 추모와 각성 그리고 성찰이 모여 작은 책 한 권을 만들어낸 셈이다. 여기에 이 기록을 갈무리하기로 기획하고 채록한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의 노고가 더해져 온전한 책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이 책에 실린 포스트잇을 작성한 원저작자를 모두 확인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하는 것이 강남역 10번 출구의 목소리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는 데 유의미하겠다는 판단하에 단행본 작업을 진행했음을 밝혀둔다. 포스트잇에 자신의 생각을 적어주신 분들께 감사를 표하며, 일일이 출간 허락을 받지 못한 점에 대해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드린다. 이 단행본의 판매를 통해 발생하는 인세는 전국 도서관에 이 책을 순차적으로 기증하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책을 직접 구입해서 보기 어려운 분들에게 이 책의 메시지를 잘 알리면서 동시에 아카이빙으로서의 특성을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다. 걸어서 갈 수 있는 동네 도서관에 비치된 책으로라도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목소리를 들여다봐주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또한 전자책을 무료로 배포함으로써 독자들의 접근성을 높일 계획이다.이 채록물은 2016년의 화창한 봄날 벌어진 한 여성의 살인 사건 자리에 용기를 내어 나아가 깊은 추모와 함께 이 사안에 대한 절실한 생각들을 토로한 글들이다. 이 1004개의 글이 죽은 이를 애도하고 살아 있는 이들의 슬픔을 위로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를, 또한 동시대에 벌어진 한 살인 사건에 대한 사회의 반응을 보여주는 1차 자료로서 차후의 연구에 탄탄한 토대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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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은 거대한 정신병동이다 (커버이미지)
    [사회]강남은 거대한 정신병동이다
    • 김정일 지음
    • 지식공작소
    • 2023-12-27

    강남은 거대한 정신 병동이다인터넷 살인 예고 글 “바람직한 현상이다”… 김정일 의학박사 메디컬 에세이서 밝혀최근 ‘묻지 마 범죄’ 관련 시사점 … 정신병과 치료에 대해 새롭게 인식해야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보다 더 아프다 … 강남의 ‘이상한 삶’에 대한 진단과 처방“기가 막힌 현실이지만 냉정하게 보면 바람직한 현상이다.”김정일 의학박사는 최근 ‘묻지 마 범죄’ 이후 인터넷에 살인 예고 글이 폭증하고 있는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무슨 위험천만한 발언인가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방구석에 숨어 있지만 말고 이렇게라도 튀어나와야 경찰에도 붙잡혀 가고 구속 생활도 하면서 부족했던 사회 경험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은둔형 외톨이로 위험을 숨기고 있는 것보다 위험을 드러내는 것이 그나마 치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9월 7일 발간되는 김정일 박사의 메디컬 에세이 《강남은 거대한 정신 병동이다》는 ‘분당 칼부림 사건’(프롤로그)으로 시작해 ‘피프티피프티 메시지’(에필로그)로 끝난다. 강남의 위험하고 이상한 삶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주로 다루었지만 근래 일어난 사건사고까지 정신의학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해법을 제시한다. 호신 도구를 고르기 전에 생각해 둘 것분당 서현역 칼부림 사건, 신림동 칼부림 사건, 날로 심각해지는 데이트 폭력, 어디 그뿐인가? 학교에서는 어린 학생이 교사를 폭행한다. 상상도 못했던 사건에 놀란 사람들로 뒤숭숭하다. 백주대낮에 벌어진 참상에 사람들은 저마다 호신용 도구를 구입하고 지인들에게도 구입하라고 재촉한다. 그러나 호신 도구를 고르기 전에 한 가지 생각해 둘 것이 있다. 이 참혹한 사건의 당사자가 내가 될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나와 내 가족이 피해자가 될 수도 있지만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소한 불면증이나 우울증이 심각한 정신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은둔형 외톨이로 방 안에 틀어박혀 있던 자녀가 언제 뛰쳐나가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 없다. 최근 묻지 마 범죄의 범인들은 조현성 인격 장애로 판명되는 경우가 많다. 조현병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발생하는 흔한 병이다. 이 병이 자기를 향하면 자살이나 자해가 되고, 밖을 향하면 살인이나 폭행, 강도가 된다. 환각, 경계선 인격 장애, 마약 중독 같은 정신 질환도 크게 늘고 있다. 정신 건강과 돈은 비례하지 않는다그런데 지금 이런 정신 질환이 대한민국 경제 1번지 서울 강남에서 확산되고 있다.정신 건강과 돈은 비례하는 게 아니다. 부자 아빠가 자기 아이를 ‘더 잘하라’고 두들겨 패고, 의사 아들을 결혼시킨 엄마는 우울증으로 자살을 하겠다고 난리다.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돈만 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혈연관계까지 팔아먹고 거짓말, 사기, 배신, 복수가 난무한다. 돈과 거짓말을 둘러싼 가족 간의 전장은 상상을 초월한다. 선배와 후배, 친구와 지인 사이에서도 돈을 둘러싼 정신병적 현상이 심심찮게 목격된다. 유명 연예인뿐만 아니라 평범한 직장인들까지 프로포폴 주사에 피부과, 성형외과, 정신과를 다니며 힘들게 번 돈을 몽땅 털어 넣는다.서울 강남에서 정신과 의원과 정신건강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김정일 의학박사는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상담했던 강남의 ‘이상한 삶’을 정신의학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진단과 처방전을 내놓는다. 그는 “위가 비어 있으면 채워야 하고, 방광이 차 있으면 비워야 한다. 차고 비우는 데 이상이 생기면 몸의 질병이 생긴다. 정신 질환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차 있으면 평온하고 마음이 비어 있으면 고통을 받는다. 마음을 채우고 비우는 데 이상이 생기면 마음의 질병이 생긴다”고 말한다.‘묻지 마 범죄’, 사후 약방문식 경찰 투입으로 해결 안 돼최근에 더욱 기승을 부리는 ‘묻지 마 범죄’는 대부분 정신병이 원인이다. 사건 장소에 경찰 병력을 배치하는 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신과 치료 대상자들을 잘 선별하고 관리해서 꾸준히 치료해야 한다. 마리화나가 없었다면 스티브 잡스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 정신과 약을 잘 쓰면 재벌도 될 수 있다. 고통스런 삶을 살다가 한순간 범죄자로 돌변할 것인가, 약물 치료로 기운을 얻어 성공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답은 명확하다. 김정일 박사는 “정신병은 가족이 고치는 거다. 가족이 사랑으로 집중하면 반드시 기적 같은 굉장한 일이 일어난다”며 “강남 사람들의 위험하고 이상한 삶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자신의 삶에 유익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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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꾸로 가는 새로운 튀르키예 - 이슬람주의·포퓰리즘의 올무 (커버이미지)
    [사회]거꾸로 가는 새로운 튀르키예 - 이슬람주의·포퓰리즘의 올무
    • 김덕일 지음
    • 렛츠북
    • 2024-02-19

    민주주의를 둘러싼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의 대결장총통-칼리프를 꿈꾸는 에르도안의 실체《거꾸로 가는 새로운 튀르키예》는 오스만 제국의 멸망과 튀르키예 공화국의 탄생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공화국의 근대화와 민주화를 위한 험난한 여정 속에서 세 번의 쿠데타, 중심부와 주변부 및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 사이에 대결, AKP 집권 이후에는 ‘새로운 튀르키예’라는 구호 아래 튀르키예가 겪고 있는 인권, 시민적 자유, 민주주의의 퇴보, 외교 참사, 경제위기를 폭넓게 다룬다.그렇다면 현재 튀르키예의 정치적 행보 및 사회적 흐름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저자는 우선 튀르키예를 ‘형제의 나라’ 혹은 ‘동서양 문명의 교차로’로 보는 관점을 내려놓고 책을 읽길 권한다. 그리고 이 책은 세속주의를 침해하며 이슬람주의라는 이념에 편향된 정치인의 포퓰리즘이 어떻게 튀르키예라는 한 국가의 정치, 경제, 문화 등을 후퇴시키는지 낱낱이 밝힌다. 이를 통해 우리 국민이 꼭 알아야 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지양하고 지향해나가야 할 것들에 대한 답을 분석적이고 명쾌하게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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